역사 속 이야기

[스크랩] 백범 김구 저격 후 기록사진들

우리유황오리 2009. 9. 21. 07:37

-= IMAGE 2 =-

-= IMAGE 3 =-

-= IMAGE 4 =-

-= IMAGE 5 =-

-= IMAGE 6 =-

-= IMAGE 7 =-

-= IMAGE 8 =-

-= IMAGE 9 =-

-= IMAGE 10 =-

-= IMAGE 11 =-

-= IMAGE 12 =-

-= IMAGE 13 =-

-= IMAGE 14 =-

-= IMAGE 15 =-

-= IMAGE 16 =-

-= IMAGE 17 =-

-= IMAGE 18 =-

 

백범 김 구 선생은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셨다. 글을 즐겨 17세에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하여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셨다. 19세에 선봉장이 되어 동학혁명에 참여하셨다. 고능선 선생을 만나 충의를 배우셨다. 21세에 황해도 치하포에서 우리 나라 사람으로 변장한 일본군 중위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사형을 받았으나 고종황제의 분부로 형이 정지되었다. 일본인들이 참견하여 석방을 미루자 탈옥하여 중이 되셨다. 25세 이후, 좋은 나라는 바른 교육에서 나온다 하여 교육사업에 전념하셨다. 36세에 독립운동으로 17년형을 받았으나 5년만에 감옥을 나오셨다. 1919년 중국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청사 문지기를 원하니 44세이셨다. 52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이 되셨고, 56세에 한인애국단을 만들어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의거를 이끄셨다. 65세에 한국 광복군을 만들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셨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임시정부를 지키셨다. 1945년 11월 23일 김구 선생은 중국으로부터 우리 나라로 돌아오셨다. 그때 우리 나라는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다스리고 있었다. 김구 선생은 이것이 우리 나라를 갈라놓고 나아가서는 서로 전쟁을 할 것이니, 통일국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전국을 다니며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라 안 사정은 점점 어려워만 갔다. 공산주의 나라를 세우자는 사람과 민주주의 나라를 세우자는 사람들이 의견을 합치는 문제를 의논했지만, 미국과 소련은 각각 자기들의 뜻에 맞는 나라를 세우려 고집했기 때문에 일마다 의견이 맞섰다. 이러다간 38선이 영원히 이 땅을 두 동강으로 갈라놓을 판이었다. 김구 선생은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직접 북한의 지도자를 만나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통일정부를 세우려는 열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첫 숟가락에 배부르지 않는 거라시며 통일조국을 이루기 위한 여러 가지 일을 꾸미시다가,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총을 맞으시니 온 민족의 슬픔이었다. 때는 1949년 6월 26일, 선생님 74세이셨다.



 

─━☆쇼킹차이나놀라운세상공포충격영상중국황당섹시엽기클릭☆─━

출처 : 열 린 바 다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

'역사 속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성씨의 유래  (0) 2010.02.01
[스크랩]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  (0) 2009.09.16
[스크랩]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자료들  (0) 200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