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무신 |
모처럼 들른 친정집. 뒤뜰과 연결된 한지 문을 여니 연초록 감나무 잎사귀가 시야를 산뜻하게 한다. 잎새 사이로 비치는 햇살 조각이 눈부시도록 정겹다.
아버지가 생존해 계셨으면 돋아나는 대로 뽑아 내셔서 이렇게 풀밭처럼 되진 않았을 텐데,
뒤뜰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중풍으로 쓰러지신 아버지는 말씀은 어눌하게 하시고 오른쪽은 마비되어 모든 일을 왼손으로 하셨다. 돌 틈 사이에 난 풀을 한 손으로 뽑아내시던 모습 을 그려본다.
문득 바라본 굴뚝 옆에 지팡이가 있고 밑에는 고무신 한 켤레가 보인다. 주인 잃은 물건에는 뽀얗게 먼지가 서려 있다. 유품을 정리할 때 빠뜨린 모양이다.
오른발이 무감각인데다가 부어 있어서 구두는 엄두도 못 내고 고무신을 신으셨다.
검정, 청색, 하얀색, 고무신만 신다가 가시는 저승길에도 하얀 고무신이 놓여 있었다. 그러니 건강하신 몸으로 외출할 때 신으셨던 구두 한 켤레는 신발장에 고이 모셔져 바깥 구경 할 일이 없었다.
아버지의 발이라도 씻겨 드리듯 손으로 고무신을 정성스럽게 닦아 댓돌 위에 세워 놓았다. 어렸을 때 어둑해지면 지게나 삽을 들고 대문을 들어서시던 아버지는 샘물을 퍼 올려 바지 걷어 올리고 씻으신 후 검정 고무신을 댓돌 위에 세워 놓곤 하셨는데……. 아버지의 체취가 오롯이 남아 신발장에서 옹송거리는 고무신을 가슴에 품고 산다
ps 수필로 등단한 여동생 검색하다가 이글을 발견하여 올려봅니다 작년 7월달 충청일보에 실린기사입니다 중풍으로 쓰러져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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